2011년 4월 삼학도의 추억을 더듬어가며 ----
조심스럽게 나의 기억의 한편을 ~~
많이너무도많이 변해버린 어린날의 기억 아니이제는 추억이라하여야하나???
1950년대의 삼학도 (사진 故 金洪仁)
바로앞의 유달산의 정자는 유선각인것같다
나는 어린시절 이유달산과 저기보이는 삼학도를 전설속의홍길동처럼
바람같이 날라다녔었다 ???
추억을더듬다보니 유달산과 삼학도는 한묶음이었던것 같다(분리해서 추억을되씹어보려고 사진을
따로찍었다)
어제는 이유달산 유선각 밑에있는 국민학교친구집에가서 고구마를 서리해먹었고
오늘은 저 삼학도에 줄배를 타고가서 백제부여의 고란사같은 절밑에 밤나무 도토리나무
를 서리하러가서 중에게 흠씬 두둘겨맞고 돌아다녔든기억에 슬그머니 웃음을 흘린다~~
이사진은 2011년 4월10일 찍은 유달산과 삼학도의 모습이다.
중간에보이는 바위산이 교과서에나오는 노적봉이다.
이제부터는 삼학도의 변해버린 오늘의 모습을보러갈련다 옛모습의 사진을 재현해볼려고
바다 , 산 , 뗏목 , 줄배 , 잔듸(물을머금은) 들을 찾아보았건만 도저히 재생키 어려워
기억을 더듬어 설명으로 대체한다????
이곳이 삼학도 물건너가 뭍이었다 저기보이는산이 유달산이다
이그림의 오른쪽 끝에서 물건너까지 줄배가있어서 60년대중반 (1원인가를 받았던것같다)
사공이 목포와 이곳삼학도까지 줄을잡고 작은배를띄워서 우리를 건네주었다
오른쪽에보이는 저 계단있는곳을 막아서 다리를 만들고 육지화 시킨것이다.
이곳은 삼학도 큰산에서 목포역으로 가는 기찻길을그린것이다
가징먼저 이길이 나겠끔 몸체만한바위를 뿌려서 물길을 막고 길을낸것이다
기찻길 오른쪽은 작은배로 투망같은걸하면서다녔던 바다였다
삼학도 호남제분과 석탄부두의 화물을 담당하는 기찻길이다
60년대 후반에 들어섰던 호남제분은 제조업이 없던 시절목포의 큰 힘이었다
삼학도 뒸쪽 큰바다가 원료를 수입하기가장 쉬운 운송조건이 되었나보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공장에서 가계의힘을 만들어 갔다.
먹을게 귀했던 시절 이곳 호남제분은 목포 인근 의 많은사람들에게 귀하고 고마운 공장이었다.
이곳은 60년대 배에서내려 처음으로대했던삼학도 큰산 (우리는 여기삼학도의 지명을 큰산 작은산 끝에산이라 불렀다)의 얼굴사진이다 그때는 어린때였는지 엄청나게 크게다가왔었다
지금그때와 그리많이 변하진않았다. 흙이조금깍인것과 규모가조금작아진것 빼고는
거의같다.
이곳은 현재 의 삼학도 큰산옆의풍경이다 지금이곳은 큰산둘레에 수로를내서 바닷물이들어오게끔
만들어놓았으나 60년대에는 바로자연그대로의 바다였다.
삼학도 산 전체를 휘감아서 이렇게 자전거길을 내고 또 조깅도할수있게
공원화를 조성해 놓았다.
지금은 외곽도로와 일흥조선(문선명재단) 석탄부두등이 자리하고있으나
60년대지금이길은 큰산의 끝길이며 길주위에는 통닭집과 선술집이 자리하고 있었고 밑에 찻길과 그밑에는
목포의 목재상(재재소) 들이 운영하는 뗏목들이(원목)큰산뒷쪽을 다자리잡고있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 아버지의친구분들이 이곳으로 수영겸 술한잔하시고자할때 손잡고와서 허겁지겁 먹었던
아련한 기억들이 난다.
산중앙을 가로지르는 길
정상의8각정은 2010년말에완공시킨 정자이다 이곳을 달려다니다가 양옆어느쪽을가든 4통팔달로 다뚫어져있어서
팬티만입고 다니다가 바로 바닷물로 뛰어들어갔었던 어린시절 당신도 이런아름다운 추억이있겠죠???
산에있는 나무계단과 돌계단 운동기구들 현재의 공원화된 산의 모습들이다.
삼학도 공원화사업을 하면서 2009년도인가 목포의눈물의 가수 이난영의 수목장을 유치했다.
이곳은 70년도 초 목포시시내에있던 사창가(집창촌) 엘로하우스가 이곳으로 와 지금이장소에서 호황을 누렸던 곳이다
예전 이길을따라 쭉가면 저기 저 제분공장뒷쪽으로 부여 고란사같은 절이 있었다
절벽같은 형태의 바다가 밑으로 흐르고 있었고 그옆으로는 절이 보이지않을만큼이나 밤나무등 이름도모르는
많은 나무들이 빽뺵히 들어차있었고 그길을 뚫고 밤이나 도토리 상수리 를 서리하다가 들켜서 호되게 당했던 기억들---
작은산으로 왔다. 60년대이곳은 잔듸,물먹은잔듸였었다. 아침에왔다가 해지는지도 모르고 놀았던
메뚜기와 개구리를잡아서 구워먹고 뱀도잡아서 지나가던 여자애들을 놀려먹었던 애틋한 추억들----
이곳은 작은산앞쪽이다
60년대에는 온갖 풀밭이었으나 다리가 놓아진뒤로 목포시의 고물상이나
비닐집 그때의언어로 거지들 넝마주이들의 집합장소 로 변해가고 있을즈음
80년대에 이곳으로 한국냉장 공장이 들어서면서 목포의많은고깃배들이 얼음등을 보급받고자 이쪽 삼학도로 방향을 바꾸면서
선술집들의 호황기가 들어서게된다
학교친구들의 집이 이곳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들도 이곳에서 낮과밤을잊어가면서 젊음을 죽였던것같다.
적어도 100여집이 넘었던것같다 집집마다 목포의눈물이 삼학도를집었다 놓았다를하면서 한집건너 싸움질
정말 질펀한 항구의 밤이었던것 같다(어디 영화에서 본기억처럼)
언제인가 한냉이 물러나면서 고깃배가 줄어가더니 이곳에도 찬바람이-------
지금이곳 삼학도풍경은 이렇게 레포츠의대명사격인 요트마리나도갗추어져있다.
가장작은새끼산을 이렇게 예쁘게공원화를 시켜놓았다
환경파괴를했니 안했니 하며 토를달고싶지않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레저와 복지의 세계로 가고있는지금
건전한 눈으로 보면서 잘조성되있는모든것을 즐기는마음(긍정적인 사고)로 나는가고싶다.
지금의 삼학도는 나의기억속에있는 많은 추억들을 불러 나를숙연하게해주고 있다 고맙게도 ????
수로의 발상은 좋으나
만들기는하나 관리가??
죽어있는물이되어서 파아란~~
쓰레기에 악취까지???
좋은마음으로 갈련다----- 2부로